흔히 ‘부부는 닮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상당히 비과학적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DNA가 섞여 가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오랜 시간 본다 하여 얼굴 형태가 변하는 것도 아닐테니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혼한 지 20년이 지난 부부는 누구라도 사진만 보고도 부부임을 짝지을 수 있다. 심지어 약혼자나 결혼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부부 역시 가려낼 수 있다. 그만큼 부부는 닮았다는 얘기다.
최근 영국의 리버풀대 연구진은 ‘부부가 오래 살면 살수록 닮아간다’는 비과학적 사실을 과학적 사실로 밝혀냈다. 얼마나 자주 웃느냐 찡그리느냐에 따라 특정 얼굴 근육과 주름이 당기고 펴지면서 결정되는데, 오래 살수록 부부의 감정 표현이 비슷해지면서 근육과 주름의 움직임이 같아져 얼굴 표정이나 인상이 닮아간다는 것이다. 즉 결혼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서로 웃고 즐긴다면 둘 다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서로 싸우거나 인상을 많이 쓰면 결국 주름이 많이 느는 얼굴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부부가 닮았다는 것은 가치관이나 성격을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스타일이나 외모, 식성이 닮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성격이 닮아가다 보면 서로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같은 가치관을 갖게 되고, 같은 걱정과 같은 즐거움을 공유하다 보니 같이 웃게 되고, 따라서 서로서로 풍기는 인상이나 행동이 비슷해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부부가 길게는 몇십년을 함께 살면서 전혀 닮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부는 병도 닮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한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 부부는 같은 식성을 갖게 되고, 같은 운동습관에 음주․흡연처럼 나쁜 생활습관도 닮아가기 때문에 병도 유사한 질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복부 비만 등의 질병을 조사한 결과 부부는 비슷한 병을 함께 앓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과학자들은 “부부는 닮아진 것이 아니라 원래 닮아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부부는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신과 닮은 이성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자신과 닮은 사람을 더 신뢰하며, 자신과 닮은 이성을 배우자로 선택하여 결혼한다고 한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배우자를 선호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계에서 충돌이 적고 원만한 사이가 유지되며, 아이를 기르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일반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에 본 부모의 모습을 닮은 이성에게 서로 끌린다고 주장했다. 자신과 가장 유사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모의 얼굴을 연상하기 때문이며, 내면적인 성격이나 가치관에 국한된 게 아니라 외모가 반드시 포함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부모를 닮은, 즉 자신과 유전자가 비슷한 배우자를 선택하는 근연교배가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한 유전자들을 더욱 잘 보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전적 특성이 비슷한 부부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성격이나 체형이 비슷한 커플일수록 유전적으로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성격과 체형이 비슷한 부부일수록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럼 애초부터 나와 닮은 사람을 배우자로 찾아나서야 할까. 과학은 이렇다, 저렇다고 하나의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특히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해 주고 배려하는 사람에게 이끌린다는 점이다. 얼굴이 하나도 닮지 않았어도, 체취가 딴 판이라 하더라도 상대에게 진심으로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면, 상대는 나를 자신과 닮은 사람으로 여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부부는 3주 서로 연구하고, 3달 사랑하고, 3년 싸우고, 30년 참고 견딘다고 한다. ‘다름’으로 만나 ‘같음’으로 사는 게 부부다. 부부가 서로를 닮으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서로에게 바치는 최상의 배려이자 이해다. 좋은 부부는 그래서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