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8일 중국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현재 중국에서는 ‘잃어버린 조상’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여기서 ‘잃어버린 조상’이란 1929년에 발굴되었다가 2차 대전 직후 사라져 버린 북경원인을 말한다. 분명 그들에게 북경원인의 존재는 다른 나라보다 뿌리 깊은 역사를 가졌다는 자부심이자 증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라진 북경원인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북경원인의 두개골 화석은 1929년 12월 스웨덴의 유명한 지질학자이자 고고학자, 탐험가인 앤더슨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된 곳은 중국 주구점(周口店)주1의 노우구(老牛溝)라 불리는 지역 남쪽에 위치한 40미터 깊이의 동굴이다. 발굴 즉시 근처의 지층과 단층에 있는 다른 화석을 비교하여 연도를 측정한 결과 무려 50~70만 년 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인류학자들이 인류 최초의 유골은 약 10~20만 년 된 독일의 네안데르탈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구점에서 북경인의 두개골이 발견됨으로써 인류의 ‘수명’이 10~20만 년에서 순식간에 몇십만 년이나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출토된 인골(人骨)의 경우 남자의 키는 156센티미터, 여자는 144센티미터로 현대인보다 다소 작게 추정되지만 뼈를 통해 추측해 본 팔다리 모양과 뇌 용적량도 현대인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뇌 용적량의 경우 현대인을 대체로 1,450cc라고 할 때 북경원인은 약간 적은 1,250cc로 밝혀졌다.
발굴팀은 계속하여 주구점에 있는 합자당(合子堂)이라 불리는 동굴을 발굴했다. 이곳에서 주구점의 성과를 또 한 번 높여주는 놀랄만한 유물들이 발견됐다. 그것은 태운 돌과 뼈, 그리고 불탄 소나무 가루와 목탄들이었다. 이 증거들은 주구점에서 살던 북경원인들이 불을 사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원시인류가 육식을 하고 불을 사용한다는 것은 인류가 지구상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증거가 됨을 의미한다. 북경원인의 유골 발굴전까지는 언제부터 인류가 불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을 사용한 흔적의 발굴은 학계에 큰 놀라움을 주었다.
주구점 일대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황색인종의 특징과 유사한 점을 보인다. 북경원인들이 사용하던 도구는 타제석기류다. 자갈들을 한쪽 또는 양쪽에서 떼어내어 만든 찍개류로 이것은 주먹도끼류를 주로 사용한 유럽과 아프리카와는 사뭇 다르다. 즉 북경원인은 ‘자갈돌 찍개 문화권’에 속한다. 이점은 한국 구석기문화와 상통하는 점이 많다. 북경원인의 후두골에는 작은 화산형 돌기가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황색인종(몽골로이드)의 특징과 같다. 또 숟가락 모양의 상문치(上門齒)를 갖고 있는데 이 점도 몽골로이드의 특징 중 하나이다. 물론 북경원인이 몽골로이드의 직접 선조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것은 틀림없다.
주구점의 발굴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전쟁의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일본군이 북경의 코앞까지 진격해오자 1937년 7월 주구점의 발굴 작업은 전면 중지된다. 그당시 북경인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 이유는 북경원인이 일본인들의 선조라고 믿었고, 일본 왕도 친히 명령을 내려 북경원인의 화석을 확보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던 그날부터 북경원인의 화석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경인의 화석을 미국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잠시 보관토록 제안하였고 중국의 장개석은 이를 승낙했다.
그런데 그 이후 북경원인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50만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지내다가 겨우 12년 동안 이 세상에 모습을 보인 후 다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북경원인의 실종은 발견할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인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으며 분노케 했다. 그렇지만, 북경원인의 화석을 어느 나라가 가지고 갔는지 현재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북경원인의 화석을 일본으로 이동시키려다 대만해협에서 침몰되었다고 알려진 일본 화물선을 인양하려는 계획이 현재 중국에서 추진 중에 있다.
다행한 것은 전쟁의 위험성을 알고 북경원인의 모형이 긴급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때 만든 모형은 형태나 색깔이 거의 진품이나 다를 바 없고, 세계 과학자들이 북경인을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인류 학자들은 언젠가 북경원인의 유물을 실제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글 : 이종호 과학칼럼니스트
주1) 주구점(周口店) 베이징[北京] 팡산구[房山區] 중부에 위치한다. 북경원인[北京猿人]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북경원인출토지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