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집필하는 현재까지 수행된 모든 측정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현 우주의 총 질량-에너지의 68%를 암흑 에너지가 차지하며, 27%는 암흑 물질의 몫이고, 나머지 겨우 5%가 통상의 가시 물질이다.
- 닐 디그래스 타이슨, ‘날마다 천체물리’ (2017)
2012년 힉스입자 발견에 이어 2015년 중력파 관측까지 성공하면서 이제 물리학계의 관심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규명에 쏠리고 있다. 미국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지난해 출간한 책 ‘날마다 천체물리’에서 우주 총 질량-에너지의 95%를 차지하면서도 그 실체를 종잡을 수 없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밝히기 위해 “우리는 뉴턴와 아인슈타인에 이어 세 번째 천재를 기다려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런데 ‘겨우 5%’를 차지하는 가시 물질, 즉 원자를 이루는 보통 물질도 사실 그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주의 보통 물질이 내보내거나 흡수하는 전자기파(광자)를 관측해(타이슨이 가시(可視) 물질이라고 쓴 이유다) 계산한 양이 이론과 시뮬레이션, 우주팽창속도 같은 관측을 토대로 추측한 양의 60% 수준이기 때문이다. (중력으로 존재를 알 수 있는 암흑 물질은 광자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비가시(非可視) 물질이다.) 그렇다면 가시 물질의 나머지 40%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은하간공간 텅 빈 건 아냐
학술지 ‘네이처’ 6월 21일자에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물질을 우주망의 필라멘트에서 찾은 것 같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우주망(cosmic web)이란 우주에서 물질이 3차원의 그물망 또는 거품 형태로 분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용어다. 우주망의 매듭이 은하단(밀집된 은하 무리)이고 매듭 사이를 연결하는 줄을 필라멘트(filament)라고 부른다. 은하단 사이의 공간, 즉 은하간공간(intergalactic medium)은 균일하게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은하간공간은 지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필라멘트 영역조차 물질의 농도가 희박해 여기서 나오는 신호를 직접 포착할 수 없다. 따라서 가시 물질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은하간공간의 필라멘트에 있을 것임에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그 존재는 추측에 그쳤다.
이탈리아 국립천체물리학연구소가 주축이 된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따뜻하거나 뜨거운 은하간공간(warm-hot intergalactic medium, 줄여서 WHIM)에서 잃어버린 중입자를 관측했다고 보고했다. WHIM이란 은하간공간의 필라멘트 가운데 온도가 10만~1000만 도인 영역으로(우주의 관점에서 10만 도는 ‘따뜻한’ 온도다!) 가시 물질이 이온 또는 플라스마 형태로 존재한다.
중입자(baryon)는 기본입자인 쿼크 세 개로 이뤄진 입자로 대부분 양성자와 중성자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다. 한편 전자의 질량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1800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잃어버린 중입자를 찾았다는 건 잃어버린 가시 물질을 찾았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앞에서 은하간공간에서는 신호가 워낙 미약해 가시 물질을 관측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산소 7가 양이온의 전자가 X선 흡수
연구자들은 퀘이사가 내보내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WHIM의 뜨거운 부분에서 중입자 존재를 증명했다. 퀘이사(quasar)는 은하 중심부에 있는 거대블랙홀로 주변 물질이 빨려 들어갈 때 강한 빛이 나오는 영역이다. 퀘이사에서 지구 방향으로 진행하는 빛다발이 WHIM을 지나가면서 중입자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면 망원경에 도달한 빛의 스펙트럼에 빛이 줄어든 띠가 생긴다. 즉 ‘흡수 스펙트럼’을 얻어 WHIM에 있는 중입자인 산소이온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우주 전체에서와 마찬가지로 WHIM을 이루는 물질 대부분도 수소이지만, 수소는 따뜻한 온도(10만~50만 도)에서도 원자핵(양성자)과 전자가 분리돼 플라스마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원자핵에 묶여 있는 전자가 빛을 흡수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
반면 산소의 경우 원자핵의 양성자가 여덟 개나 되기 때문에 따뜻한 온도 정도로는 전자 여덟 개를 다 떼어낼 수 없다. 즉 가장 안쪽의 전자 두 개는 남아 산소 이온의 형태(O+6)로 존재한다. 이 산소 이온에 붙어 있는 전자는 자외선을 흡수한다. 한편 약간 뜨거운 온도(50만~200만 도)에서는 전자를 하나 더 잃어 7가 양이온(O+7)이 된다. 여기에 붙어 있는 전자는 에너지가 더 높은 X선을 흡수한다.
수년 전 천체물리학자들은 퀘이사의 빛이 따뜻한 WHIM을 통과하며 산소 이온(O+6)의 전자가 자외선을 흡수한 뒤 지구에 도달한 스펙트럼을 분석해 따뜻한 WHIM에 분포하는 가시 물질의 양이 전체의 15% 내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값을 기존에 알려진 물질의 양(별, 차가운 기체 등)과 합친 게 추정치의 60% 수준이다.
연구자들은 나머지 40%가 뜨거운 WHIM에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유럽우주국(EPA)의 XMM-뉴턴 X선 우주망원경으로 도마뱀자리 BL천체 1ES 1553+113를 장기간(총 관측시간 175만 초(약 20일)) 관측해 얻은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1ES 1553+113는 X선을 가장 많이 방출하는 퀘이사로 최소한 72억 광년 떨어져 있다.
그 결과 퀘이사에서 나온 빛이 두 차례에 걸쳐 뜨거운 WHIM을 지날 때 산소 이온(O+7)이 흡수한 띠를 발견했다. 빛이 흡수된 정도로부터 뜨거운 WHIM에 있는 물질의 양을 추정하자 전체 가시 물질의 9~40%라는 결과를 얻었다. 즉 최대치일 경우 잃어버린 양과 같은 수준이다.
우리은하에는 별이 대략 2500억 개 있고 관측 가능한 우주 안에 은하가 1000억 개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있는 별을 다 합쳐도 전체 가시 물질의 7%를 차지할 뿐이다. 이 별들 가운데 덩치가 작은 것들을 빼면 결국 최후에는 폭발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은하 역시도 안정한 구조가 아니라 다른 은하나 은하간공간과 물질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별이 생겨난다.
약 46억 년 전 태양계를 이룬 물질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은하를 넘어 다른 은하와 은하간공간에 이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시는 물 한 모금에 100억 년 전에는 뜨거운 WHIM에 있었던 산소 원자가 들어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과학은 그럴 수도 있다고 조용히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