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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 쏘는 뿔도마뱀의 사연' 글 입니다.

‘피눈물’ 쏘는 뿔도마뱀의 사연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7.09

조회수 4807

첨부파일 : No File!
약자는 늘 서럽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동물 세계라면 더욱 그렇다. 약자들은 항상 주위를 살피며 살아야 하고 천적을 만나면 재빨리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빠른 발을 가진 것은 아니다. 느린 약자들은 강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방어법을 채득해야 했다.

천적의 눈에 안 띄도록 주변과 비슷하도록 몸의 색과 모양을 바꾸는 것은 가장 많은 약자들이 쓰는 방법이다. 주변 환경이 아니라 힘센 동물과 비슷하게 꾸며 속이는 것도 있다. 연기력을 한껏 발휘해 죽은 척했다가 재빨리 달아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나 쓰는 방법 대신 독특하고 창의적인 전략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동물들도 있다.

어떤 동물들은 스스로 자기 몸을 해치는 ‘자해’(自害)를 통해 자신을 방어한다. 도마뱀이 대표적인 예다. 가장 무서운 천적인 뱀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합해야 10cm 길이에 불과한 도마뱀을 즐겨 먹는다. 도마뱀은 뱀을 만나자마자 줄행랑을 놓지만 쉽게 도망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도마뱀은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면 자신의 꼬리를 뚝 떼어낸다. 뱀이 떨어진 꼬리를 먹는 동안 도망갈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 작전은 심지어 뱀에 붙잡혀 있는 경우에도 유용하다. 도마뱀은 꼬리를 뱀에게 내민 채 살랑살랑 흔들어 댄다. 뱀이 유혹에 못 이겨 꼬리를 덥석 무는 순간 도마뱀은 꼬리를 확 떼어 버린다. 뱀이 떨어진 꼬리에 놀라 방심한 사이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떨어진 꼬리는 잠시 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치기 때문에 뱀은 꼬리를 꽉 무느라 도망치는 도마뱀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도마뱀의 꼬리에는 ‘자절면’이라 부르는 끊어지는 부위가 있다. 이 덕에 도마뱀은 마음 먹은대로 꼬리를 떼어낼 수 있다. 꼬리가 떨어진 자리에는 새 꼬리가 돋아난다. 단 이 방법은 도마뱀의 일생 동안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지만 도마뱀도 꼬리를 떼어낼 때는 큰 값을 지불한다.

도마뱀의 친척인 북아메리카 서부 지역에 사는 뿔도마뱀(Phrynosoma)은 좀 더 황당하고 대범한 자해전략을 쓴다. 뿔도마뱀의 길이는 6~10cm로 도마뱀과 비슷하지만 꼬리가 짧고 두꺼비처럼 몸이 통통하다. 머리와 등에 뽀족한 뿔이 나 있어 뿔도마뱀이라고 부른다.

뿔도마뱀은 천적을 만나면 먼저 이 뿔을 흔들어 위협한다. 뾰족한 뿔이 달려있으니 먹으면 입안에 상처가 날 거라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도 적이 물러나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다. 뿔도마뱀은 ‘피눈물’을 상대방에게 뿌린다. 피눈물은 1m 가까이 날아가는데 대부분의 천적들은 이 황당한 장면에 놀라 달아난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피눈물이 아니라 눈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피를 뿜는 것이다. 뿔도마뱀이 천적을 만나면 머리의 혈압이 높아지는데 이때 눈 근처의 실핏줄은 탱탱해져 터지기 직전이 된다. 뿔도마뱀이 눈을 감는 순간 핏줄이 터지고 이 피를 작은 구멍에 모아서 단번에 쏘는 것이다. 실핏줄은 쉽게 아물기 때문에 뿔도마뱀은 별 탈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더러운 무기’로 방어 전략을 구축하는 동물도 있다. 비인도적이고 비겁하다 할지 모르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스컹크가 뿜는 독방귀가 대표적이다. 족제비처럼 생긴 스컹크는 초원에서 눈에 확 띄는 검은색 몸에 흰 줄무늬를 가졌고 걸음도 매우 느리다. 그러나 그 어떤 동물도 스컹크를 잡아먹을 생각을 못한다.

스컹크의 방귀는 3~4m까지 뿜어져 나가며 2m 내에서는 정확히 조준해 쏠 수 있다. 미국 공기청정기 업체가 선정한 가장 고약한 악취 1위인 스컹크의 방귀 냄새를 맡은 동물은 숨이 탁탁 막히고 눈앞이 흐려진다. 스컹크가 유유히 사라진 다음에도 냄새는 며칠 동안 없어지지 않는다.

또 다른 더러운 무기의 소유자 괭이갈매기는 ‘배설물’로 자신을 방어한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서 괭이갈매기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괭이갈매기는 평소 흩어져 살다가 번식기가 되면 외딴 바위섬에 수천 마리가 몰려들어 함께 산다. 바위섬이 괭이갈매기로 가득 차는 것이다.

독수리나 매 같은 육식조류는 종종 다른 조류의 둥지를 공격하는데 만약 이들이 괭이갈매기의 둥지를 건드릴 생각이라면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적을 발견한 괭이갈매기는 크게 울어 다른 갈매기들에게 침입을 알린다. 그러면 그 섬에 있는 괭이갈매기는 일제히 날아올라 적을 향해 ‘똥폭탄’을 갈긴다.

수백 개의 똥폭탄 세례를 맞은 육식조류는 제대로 날 수가 없다. 끈적거리는 똥이 날개를 뒤덮어 날개가 제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락하던지, 가까스로 착륙했다 하더라도 괭이갈매기 떼의 등쌀을 견딜 수 없게 된다. 번식기의 괭이갈매기는 그 어떤 적도 건드릴 수 없는 ‘조폭’에 가깝다.

‘자해’든 ‘더러운 무기’든 이 모든 방법은 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짜낸 결과다. 방법이야 어떻든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은 멋지다.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야말로 오랜 옛날 가장 약했던 인간을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만든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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