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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8월 25일][출향인 어떻게 지내세요?]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 글 입니다.

[국제신문 8월 25일][출향인 어떻게 지내세요?]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6.08.25

조회수 9775

첨부파일 : No File!
[출향인 어떻게 지내세요?]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
"남극은 부산사람들이 개척한 땅"
85년 첫 탐험대장 맡아
당시 핵심멤버들 모두 부산출신
부산에 극지과학관 세우고파

 
  한국극지연구진흥회 윤석순 회장은 "동남권 과학관 건립이 시급히 이뤄져야한다"며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극지 과학관도 건립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수송기 문이 열리자 하얀 들판만 보이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더군요. 맨주먹으로 무모하게 뛰어든 도전이었지요."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 회장(70)은 21년 전 남극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의 감흥을 이렇게 회상했다.

'1985년 우리나라도 윤석순 남극관측탐험대 대장이 16명을 2개조로 편성, 킹 조지섬과 빈슨매시프를 탐사하였다'. 동아두산대백과사전이 기록해 놓은 최초의 한국 남극탐험사다. 전 민정당 의원인 윤 회장을 정치인이 아닌 탐험가로 역사는 기억할 모양이다.

윤 회장은 "남극은 부산사람들이 개척한 땅"이라면서 "항구도시 부산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바다의 끝"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탐험대장이던 윤 회장(경남 진교중-부산고-부산대)을 비롯 해양연구소의 장순근(부산고), 최효(경남고) 박사, 장비와 식량을 책임진 이동화(동래고-동아대) 대원 등 핵심맴버들이 모두 부산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탐험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 연두순시에서 남극조약에 대한 관심을 표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1985년 당시 한국해양소년연맹단 총재였던 윤 회장은 남극조약 가입을 위해 남극탐험에 나섰다고 한다.

윤 회장은 5공 당시 11대 전국구 의원 등을 지낸 여권 실세. 그는 "외무부 수산청 모두 책임질 수 없다며 물러서기에 보고서 하나 달랑 들고 청와대로 들어갔다"면서 "전 전 대통령이 재가를 하면서 했던말이 '너 임마, 살아서 돌아와'였다"고 회고했다.

윤 회장은 지난 1985년, 92년 총선때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정치인생은 마감됐지만 탐험가로서의 인생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윤 회장은 지난해 11월 최초의 극지관련 민간기구인 한국극지연구진흥회를 창립했고, 지난 5월에는 '극지인' 잡지를 펴냈다. 오는 11월에는 극지인의 날을 만들 예정이다. 선정된 극지인을 위한 포상은 남극보다 따뜻한 동남아 부부동반여행.

윤 회장은 "여생을 극지연구소 대원들을 지원하는데 쓰겠다"면서 "먼 훗날 우리나라 극지 연구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국제신문이 추진하는 동남권 과학관에도 흔쾌히 서명했다는 윤 회장이 바라는 마지막꿈은 극지과학관을 부산에 세우는 것이다. 그는 "부산사람들의 역동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극지탐험 아니겠느냐"면서 "부산 어린들에게 자부심과 꿈을 주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수도권 경쟁도시들은 극지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뛰고 있다. 인천은 송도경제자유구역 내 극지연구소를 지난 4월 유치했다. 또 일부 지자체는 극지과학관을 위해 땅의 무상기증 의사까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윤 회장은 "고성은 공룡, 고흥은 우주, 대전은 과학도시 등 전국 지자체가 미래지향적 테마를 선정해 10년, 20년후를 대비하고 있다"면서 "해양도시 부산이 남극을 선점할 수 있다면 도시 이미지는 물론 새로 창출해낼 경제적 가치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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