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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환 교수의 배이야기 <28> 하멜과 코레아호' 글 입니다.

전호환 교수의 배이야기 <28> 하멜과 코레아호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9.14

조회수 3607

첨부파일 : No File!

 

[국제신문] 2007년 9월 13일(목) 25면


 

 
  제주도 하멜전시관에 전시된 스페르베르호.


1543년 8월. 일본 규슈 최남단 가고시마에서도 한참 남쪽으로 떨어진 다네가시마(種子島) 해안에 큰 돛을 단 괴 난파 선박이 밀려왔다. 배에는 5명의 표류인이 타고 있었고, 그 중에는 중국 상인과 노란머리를 가진 포르투갈인이 있었다. 도주(島主) 앞에 끌려온 포르투갈인의 손에는 긴 쇠막대가 들려 있었다. 말뚝 위에 조개를 올려놓은 포르투갈인은 멀리서 방아쇠를 당겨 '꽝'소리와 함께 조개를 박살냈다. 대단한 무기임을 직감한 도주는 이 장총을 지금 돈으로 1억 엔이라는 거금을 주고 바꾼다. 서양 총이 일본에 전수되는 순간이었다. 이 총은 개량되어 수십만 정의 조총으로 다시 태어난다.

1592년 4월. 당시 최첨단 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수만의 왜군은 부산 앞바다에 출현한다. 상륙 이틀 만에 동래성이 함락되고 20일 만에 서울이 함락된다. 이는 전쟁 상황이 아니다. 몇만 대군이 아무일 없이 도보로 이동했어도 20일만에 서울까지 도착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칼은 조총 앞에서는 무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1653년 8월. 하멜 일행을 태운 스페르베르호가 네덜란드를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폭풍우에 밀려 제주도 서쪽 차귀도 해안에 표착한다. 기록상으로 서양배가 최초로 한반도에 상륙한 것이다. 64명 중 28명이 익사하고 36명이 살아남아 이듬해 서울로 호송된다. 일본이나 중국으로 보내달라는 이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정은 조선의 정보가 유출된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억류토록 하고 전라도 여러 곳에 분리 수용시킨다. 일본과 중국에도 이 사실을 극비에 부쳤다. 13년의 억류 생활 끝에 1666년 하멜은 동료 7명과 함께 조선 탈출에 성공해 일본 나가사키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商官)에 도착한다. 일본은 1609년 나가사키 북부 히라도에 이미 네덜란드 무역상사를 열었다. 1641년에는 나가사키 시내 앞바다를 메워 인공섬인 데지마를 만들고 히라도로부터 네덜란드 무역상사를 옮겨 서양과의 무역 교류를 하고 있었다.

1668년 하멜은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로 알려져 있는 '스페르베르호의 불운한 항해표류기'를 발간한다. 이 책의 파장은 엄청났다. 미지의 나라 코레아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유럽인들에게 소개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바로 조선과 직교역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669년 동인도회사는 천 톤이나 되는 거대 상선을 만들어 이름을 '코레아호'라 명명했다. 한국이라는 이름을 단 최초의 배가 우리나라가 아닌 서양에서 탄생한 것이다. 조선과의 직교역을 위해 만들어진 배였다. 네덜란드는 조선을 중국 진출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로 생각한 것이다. 1670년 4월 코레아호는 동양의 무역 본부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해 한국행을 기다린다.

동인도회사가 조선과의 직교역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눈치챈 일본 에도막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네덜란드가 한국과 직교역을 할 경우 데지마의 상관을 폐쇄시킬 것을 경고한 것이다. 결국 동인도회사는 조선과의 직교역을 포기한다. 코레아호는 조선으로 단 한번도 항해하지 못한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일본 다네가시마와 제주도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의 조우. 두 만남의 차이가 그 이후 400여 년의 두 나라 역사를 극명하게 갈라놓는다. 당시 난파선에 타고 있던 표류민은 단순한 난민이 아니라 새로운 문물 전파의 전도사였다. 38명이나 되는 이들 전도사를 대상으로 조선정부는 서양기술을 알려고 했던 기록이 전혀 없다. 행여나 코레아호가 한반도에 왔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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