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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물싸움의 추억 /김현준' 글 입니다.

[과학에세이] 물싸움의 추억 /김현준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9.18

조회수 3660

첨부파일 : No File!
 
나는 어린 시절을 서울의 변두리인 청량리에서 보냈다. 집 근처에 홍릉이 있었고, 능 주변으로 야트막한 산이 있었지만 거의 나무가 없었다. 산이 크지 않아 평상시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았지만, 장마철 비가 온 다음의 며칠 동안은 맑은 물이 흘렀다. 이맘때면 동네 아이들은 개울가로 모여들었다. 물싸움을 하기 위해서.

물이 깊지 않아서 물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대신 편을 나누어 개울의 상류와 하류에 자리를 정한 다음 각자의 자리에서 흙으로 물길을 막는 놀이였다. 서로의 흙댐이 완성되면 윗자리를 차지한 편이 쌓아놓은 흙댐을 부수어 그 물이 하류로 흐르도록 해서 아래편의 흙댐을 무너뜨리면 이기는 것이었다. 만일 아래편의 흙댐이 온전히 견뎌내면 서로의 자리를 바꾸어 흙댐을 쌓고 다시 아래편의 흙댐을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대개의 경우 우리 편은 상대편의 공격을 잘 막아낼 수 있었는데,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었다. 아랫자리에서 상대편의 수공(水攻)을 막을 때의 첫 번째 비결은 흙댐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모래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풀도 뿌리째 뽑아서 포개 놓았고, 진흙이 있으면 그것도 이용하였다. 진흙이 물을 덜 스며들게 하여 댐이 튼튼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한 것이었다. 흙댐을 높게 쌓고 두껍게 쌓는 것은 방어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리고 비책이 하나 더 있었는데, 댐의 하단부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이는 상대편에는 공개하지 않는 비밀의 병기였다. 흙댐이 무너지지 않게 하면서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공법이 필요하였다. 깨진 유리병의 주둥이 부분을 이용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몰려온 물의 일부가 하류로 흘러갈 수 있게 되어 우리 편이 만든 흙댐이 보다 안전할 수 있었다.

집 근처의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편을 갈라 물싸움을 할 수 있는 도시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만한 자연 공간, 물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대부분의 도시하천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는 3만197㎞의 하천 중에서 4.4%인 243㎞가 복개되어 있다. 대도시의 경우 복개하천의 비율이 더욱 높아진다 서울은 36개 하천의 총연장 241㎞ 중에서 약 31%, 부산은 192㎞의 하천 중 20%가 복개되어 있으며 도심지 구간의 하천은 90%이상 복개되어 있는 형편이다.

더욱 큰 문제는 도시하천에 흐르는 물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도시하천은 건천으로 되어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바닥을 보이고 있다. 설령 물이 흐른다고 하여도 생활하수가 뒤섞여 흐르기 때문에 악취로 인하여 혐오시설이 된 지 오래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하천의 자연성 회복은 지자체의 주요 사업이 되었고, 주민들로부터도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도심구간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는 사업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최근 건설되었거나 계획 중인 신도시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수변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호수와 하천을 조성하고 기존의 버려진 하천을 새롭게 복원하여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하천복원은 외형에만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하천과 하천변이 바라보는 대상으로만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책, 조깅, 자전거 타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물고기와 곤충, 그리고 새들과 잘 가꾸어진 인공의 조경시설들을 바라만 볼 수 있을 뿐이지 물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기회는 거의 없다.

도시하천 복원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고 있는 서울의 양재천, 안양의 학의천 정도가 아이들의 물놀이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데, 적정 수량과 양질의 수질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테마형 도시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도시하천에 생태계의 복원과 더불어 자연학습장을 조성하여 도시환경의 개선과 함께 하천과 어우러진 물문화의 복원을 꾀하고 있다. 도시의 환경과 도시민의 어메니티 증진을 위해서도 도시하천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도시하천이 생태계뿐만 아니라, 그 생태계의 일부인 사람들에게도 놀이와 참여의 대상이 된다면 도시인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어린이들이 도시의 하천에서 추억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연친화적인 감수성을 배우는 그런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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