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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핀볼효과와 한국 조선산업' 글 입니다.

<29> 핀볼효과와 한국 조선산업

분류 : 공동체 명 부서명 : 부서 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07.09.20

조회수 3429

첨부파일 : No File!
선박수요 급증·혁신공법 등 '핀' 작용으로 세계 1위 도약

 
  국내 조선소에서 개발한 메가블록 공법
20세기 초 런던의 미용사 네슬러는 여성들의 파마(곱슬) 머리를 유지하는 데 붕사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미용 수요가 늘면서 붕사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붕사 채취지역인 미국 캘리포니아에 노동자들이 몰려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들 중 한 명이 우연히 천연 금덩어리를 발견하면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빨리 태우고 가기 위해 쾌속선이 등장했다. 이상은 제임스 버크의 저서 '핀볼 효과'에 나오는 우연적 사건의 연쇄가 세상을 변화시킨 사례 중 하나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핀볼 게임은 테이블 여러 곳에 못(핀)을 박아 놓고 구슬을 튕겨 구멍에 넣는 놀이였다.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으로 발전했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구슬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핀은 구슬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다. 구슬은 다음 핀에 의해 영향을 받아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다. 즉 다른 시공간 속에 흩어져 있는 사소한 사건이나 발명이 거대한 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면서 증폭되는 연쇄적 반응에 의해 세상이 바뀐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은 특정 지역의 작은 변화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론인 나비효과의 재탕이란 비판이 있다. 또한 지나친 결과론적 해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즉 핀볼 효과를 미래 예측의 수단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세계 1등을 한 것은 핀볼 효과로 해석되는 우연적 사건의 결과물인가.

리벳이라는 핀과 노조라는 핀의 상호 작용에 의해 영국 조선산업이 사라졌다. 용접이라는 신기술, 도면, 대량생산으로 이어지는 핀들의 연쇄 작용에 의해 일본 조선산업이 50년대 중반 이후 40여 년간 세계 1등을 유지한 것은 주지의 사실. 조선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 즉 핀은 수없이 많다. 신기술, 원자재, 경기와 물동량, 환율, 에너지 수급, 인력, 임금, 국제 및 국내 정치 환경 등.

우리나라의 근대 조선업은 70년대 초에 시작됐다. 70년 이후 1, 2차 석유 파동 그리고 IMF사태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의 핀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핀들의 연쇄 작용은 우리나라를 세계 1등 조선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중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핀은 8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증가한 선박의 수요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조선소는 경쟁국가들의 큰 저항 없이 많은 배를 지을 수 있었고, 이는 기술축적과 대량 생산시스템 정착으로 이어졌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에서 기술력 있는 선발주자가 후발주자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경우 후발주자의 가격경쟁력은 선발주자의 피 흘리는 가격파괴 정책으로 후발주자를 도산시킬 수 있다. 이와 반대인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경우 후발주자는 경쟁없이 배를 지을 수 있고 이는 바로 기술축적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전통 제조업에서 적용되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깨뜨렸다. 즉 생산을 배로 늘이기 위해서는 배 이상의 생산요소를 투입해야 된다는 전통 경제이론을 뒤엎은 것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육상건조, 수중조립 및 메가블록 공법 등 새로운 혁신 생산 공법들이 대량생산 체제의 효율을 높인 결과다. 이는 핀들의 우연적인 연쇄 작용이 아니라 이들의 상호 작용을 합치고 연결하는 네트워크 즉 혁신에 의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최근 들어 중국 인도 러시아의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해상수송의 큰 증가와 함께 선박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나 중국 조선산업의 급팽창을 이끌고 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는 시기보다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조선산업의 급속한 팽창을 막고 한국이 30년 이상 1위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핀은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수요가 공급에 못 미치는 조선 불경기가 조기에 도래하는 것이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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